베트남 생활 기록

베트남 살면서 입맛만 바뀐 줄 알았는데 생각이 참 많이 달라졌네요

흰돛단배B 2026. 4. 12. 11:16

처음 하노이에 왔을 때 나는 전형적인 한국인이었다. 모든 것이 빨라야 했고, 깨끗해야 했으며, 정해진 규칙 안에서 움직여야 직성이 풀렸다. 식당에 가면 물티슈의 위생 상태를 먼저 체크했고, 길거리의 무질서한 오토바이 행렬을 보며 "이 나라는 대체 왜 이럴까"라는 오만한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고수를 듬뿍 넣은 쌀국수를 목욕탕 의자에 앉아 아무렇지 않게 먹고 있다. 단순히 입맛이 적응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내 안의 단단했던 가치관이 베트남의 습한 공기에 녹아내려 흐물흐물해진 것이었다.

고수 한 줄기에 담긴 타협의 역사

고수 특유의 비누 향이 싫어 "No Rau Mùi(노 라우 무이)"를 외치던 시절이 있었다. 그 한 줄기가 내 완벽한 식사를 망치는 침입자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는 고수가 빠진 쌀국수는 앙꼬 없는 찐빵 같다. 낯선 것을 배척하던 내 옹졸함이 사라진 자리에는, 그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체념 섞인 수용이 들어앉았다. 이게 비단 음식뿐일까. 아내와의 문화 차이도, 베트남 사람들의 느긋하다 못해 속 터지는 일 처리도 이제는 그냥 '그럴 수 있지'라며 넘긴다. 나를 지키려 세웠던 그 날 선 기준들이 무뎌지는 과정은 생각보다 아프고, 또 허탈했다.

가끔은 거울 속의 내가 낯설다. 한국에서라면 절대 용납하지 않았을 무질서에 순응하며 허허 웃고 있는 저 남자는 누구인가.

기준이 무너진다는 건, 어쩌면 내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뿌리가 깊어질수록 내가 알던 '나'는 조금씩 지워져 간다. 그게 가끔은 무섭다.

정말 무섭다.

속도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얻은 것과 잃은 것

빨리빨리를 외치던 한국의 유전자는 하노이의 교통 체증 속에서 서서히 소멸했다. 오토바이 사이에 끼여 10분을 멍하니 서 있어도 예전처럼 화가 나지 않는다. 어차피 내가 화를 낸다고 이 행렬이 뚫리지 않는다는 걸, 삶은 내 의지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베트남 도로는 매일 아침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덕분에 마음의 여유는 좀 생겼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동시에 무언가 치열하게 성취하려던 독기도 함께 빠져나간 것 같아 씁쓸하다. 나는 여유로워진 걸까, 아니면 그냥 게을러진 걸까.

타인의 시선보다 중요한 건 오늘의 평온함

한국에서는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내 직업과 연봉이 사회적 기준에 부합하는지를 끊임없이 검열했다. 번듯한 차를 타야 했고, 유행하는 옷을 입어야 했다. 하지만 여기서는 아무도 나에게 그런 걸 묻지 않는다. 그저 오늘 하루 무사히 보냈는지, 저녁 메뉴는 무엇인지가 더 중요한 대화 주제가 된다. 체면이라는 두꺼운 외투를 벗어 던지니 몸은 가벼워졌는데, 정작 그 안에 남은 알맹이가 너무나 초라해 보여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남의 시선이 사라진 자리에 오롯이 남은 '나'라는 존재를 마주하는 건 생각보다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이제는 명품 가방보다 마트에서 세일하는 맥주 한 박스가 더 큰 행복을 준다. 이런 소소함에 길들여지는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가족, 그 거창한 이름의 재해석

베트남의 끈끈하다 못해 질척거리는 가족 문화를 보며 처음엔 혀를 내둘렀다. 사촌의 사촌까지 챙기는 그 오지랖이 이해가 안 갔다. 그런데 혼자 이 먼 땅에서 아프고 외로워보니, 그 질척거림이 사실은 서로를 지탱하는 거대한 그물망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독립적이고 쿨한 관계를 지향하던 나는 어느새 아내의 가족들과 어울리며 그 그물망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개인의 자유보다 공동체의 안위가 우선인 이들의 삶의 방식이, 차갑던 내 가슴을 조금씩 데워놓았다.

물론 여전히 피곤하다. 끝없는 경조사와 간섭은 적응하기 힘들다. 하지만 누군가 나를 '우리'라는 테두리 안에 넣어준다는 것, 그게 이 낯선 하노이에서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이제는 안다.

변해버린 나를 인정한다는 것

어제는 오랜만에 한국에 있는 친구와 통화를 했다. 친구는 여전히 주식 이야기, 아파트 가격 이야기로 열을 올렸다. 예전 같으면 나도 맞장구를 치며 열띤 토론을 벌였겠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들이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렸다. 친구가 말하는 '성공'의 기준과 내가 하노이 길거리에서 느끼는 '행복'의 괴리가 너무나 컸다. 통화를 끊고 나니 내가 정말 다른 세상으로 건너와 버렸다는 실감이 났다. 입맛만 바뀐 게 아니라, 세상을 보는 렌즈 자체가 교체되어 버린 것이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 돌아가고 싶긴 한 걸까.

창밖에는 여전히 오토바이 경적 소리가 끊이지 않고, 실내기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나는 고수 향이 밴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멍하니 앉아 있다. 변해버린 내 모습이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예전의 그 꼿꼿했던 내가 그립지도 않다. 그냥 이게 지금의 나라는 걸, 하노이라는 도시가 나를 깎아내어 만든 새로운 형체라는 걸 받아들일 뿐이다. 오늘 밤도 하노이의 공기는 여전히 눅눅하고, 내 생각의 타래는 끝없이 엉켜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