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12 4

베트남 살면서 입맛만 바뀐 줄 알았는데 생각이 참 많이 달라졌네요

처음 하노이에 왔을 때 나는 전형적인 한국인이었다. 모든 것이 빨라야 했고, 깨끗해야 했으며, 정해진 규칙 안에서 움직여야 직성이 풀렸다. 식당에 가면 물티슈의 위생 상태를 먼저 체크했고, 길거리의 무질서한 오토바이 행렬을 보며 "이 나라는 대체 왜 이럴까"라는 오만한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고수를 듬뿍 넣은 쌀국수를 목욕탕 의자에 앉아 아무렇지 않게 먹고 있다. 단순히 입맛이 적응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내 안의 단단했던 가치관이 베트남의 습한 공기에 녹아내려 흐물흐물해진 것이었다.고수 한 줄기에 담긴 타협의 역사고수 특유의 비누 향이 싫어 "No Rau Mùi(노 라우 무이)"를 외치던 시절이 있었다. 그 한 줄기가 내 완벽한 식사를 망치는 침입자처럼 느껴졌다. 하지..

국제결혼 서류 준비하면서 알게 된 공중 과정 기록

사랑해서 결혼하겠다는데 국가가 요구하는 종이 뭉치는 생각보다 훨씬 두껍고 차가웠다. 국제결혼이라는 거창한 이름 뒤에는 '공증'이라는 끝없는 계단이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그 계단을 오르내리며 내 인내심의 바닥을 몇 번이고 확인해야 했다. 처음엔 그냥 서류 몇 장 떼어서 도장만 찍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하노이의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공증 사무소를 찾아 헤매고 번역본의 오타 하나 때문에 발길을 돌려야 했던 그날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입안이 까칠해질 만큼 피곤하다.번역과 공증, 그 지독한 뫼비우스의 띠가장 먼저 마주한 벽은 '번역 공증'이었다. 한국에서 떼어온 혼인관계증명서와 가족관계증명서를 베트남어로 옮기는 과정부터가 고역이었다. 단순히 언어를 바꾸는 게 아니라, 그 서류가 '진짜'임을 증명받기 위해 외..

사랑만으로 버티기엔 베트남 생활은 역시 현실이었다

처음 아내를 만나 베트남행을 결심했을 때만 해도 내 머릿속은 온통 핑크빛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지옥이라도 가겠다"는 유치한 대사가 내 삶의 모토가 될 줄 알았다. 하노이의 매연도, 낯선 언어도 아내의 미소 한 번이면 다 녹아내릴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공항 게이트를 나서는 순간 마주한 하노이의 습한 공기는 내 낭만을 순식간에 현실의 눅눅함으로 바꿔놓았다. 사랑은 분명 위대하지만, 매일 아침 눈을 뜨며 마주하는 베트남의 아침은 지독하리만큼 현실적이었다.언어라는 장벽 앞에 무너진 로맨티시스트가장 먼저 나를 괴롭힌 건 침묵이었다. 아내와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도 내 짧은 베트남어와 아내의 서툰 한국어 사이에는 늘 거대한 강이 흐르고 있었다. 마음속엔 수만 가지 감정이 소용돌이치는데, 정작 입 밖..

아내랑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는데 편했던 순간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탁을 치우는 소리가 멎었다. 하노이의 밤은 늘 그렇듯 창밖에서 들려오는 오토바이의 낮은 저음과 어디선가 들려오는 이웃집의 TV 소음으로 채워져 있었다. 거실 스탠드 하나만 켜둔 채 우리는 소파 양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내는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보고 있었고, 나는 낮에 읽다 만 잡지의 광고 면을 무심하게 넘기고 있었다. 선풍기 헤드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느릿하게 고개를 저으며 바람을 보냈다. 바람이 닿을 때마다 셔츠 깃이 살랑거렸고, 그 소리가 내 귓가에는 유난히 선명하게 들렸다.우리는 10분 넘게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보통의 부부라면 "오늘 어땠어?"라든가 "내일은 뭐 할까?" 같은 말들을 주고받았겠지만, 오늘은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