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아내를 만나 베트남행을 결심했을 때만 해도 내 머릿속은 온통 핑크빛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지옥이라도 가겠다"는 유치한 대사가 내 삶의 모토가 될 줄 알았다. 하노이의 매연도, 낯선 언어도 아내의 미소 한 번이면 다 녹아내릴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공항 게이트를 나서는 순간 마주한 하노이의 습한 공기는 내 낭만을 순식간에 현실의 눅눅함으로 바꿔놓았다. 사랑은 분명 위대하지만, 매일 아침 눈을 뜨며 마주하는 베트남의 아침은 지독하리만큼 현실적이었다.
언어라는 장벽 앞에 무너진 로맨티시스트
가장 먼저 나를 괴롭힌 건 침묵이었다. 아내와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도 내 짧은 베트남어와 아내의 서툰 한국어 사이에는 늘 거대한 강이 흐르고 있었다. 마음속엔 수만 가지 감정이 소용돌이치는데, 정작 입 밖으로 나오는 건 "밥 먹었어?", "피곤해?" 같은 단순한 안부뿐이었다. 내 속마음을 온전히 전하지 못한다는 그 답답함은 생각보다 훨씬 파괴적이었다. 사랑하니까 다 이해해줄 거라 믿었지만, 오해가 쌓이고 그 오해를 풀지 못해 등 돌리고 누웠던 밤이면 천장에 돌아가는 실링팬 소리가 그렇게 처량할 수 없었다.
가끔은 거실에 앉아 있는 아내를 보며 묘한 소외감을 느낀다. 아내가 처가 식구들과 웃으며 영상 통화를 할 때, 그 빠른 베트남어 속사포 사이에서 나는 그저 웃는 얼굴로 고개만 끄덕이는 인형이 된 기분이었다. 사랑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정작 나는 이 집안에서 가장 고독한 섬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검색해보곤 한다. 비겁한 생각인 줄 알면서도, 내 언어로 내 마음을 쏟아낼 수 있는 그곳이 미치게 그리워질 때가 있다.
창밖으로 들리는 알아들을 수 없는 고함 소리들이 내 방 안까지 침범할 때면, 나는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쓴다. 여기가 내 집인데, 왜 나는 여전히 이방인처럼 겉돌고 있는 걸까.
통장 잔고와 체면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삶
베트남은 가족 공동체 문화가 정말 강하다. 이게 처음엔 정겨워 보였는데, 직접 그 속에 들어가 보니 이건 정이 아니라 '책임'의 무게였다. 매달 돌아오는 처가댁 경조사는 내 가계부를 사정없이 흔들어놓았다. 사촌의 팔순, 조카의 돌잔치... 끝도 없이 이어지는 모임마다 나는 '한국인 사위'라는 타이틀 때문에 남들보다 더 큰 봉투를 준비해야 했다. 내 주머니 사정은 뻔한데, 아내의 체면을 생각하면 차마 입 밖으로 "이번엔 좀 아끼자"는 말이 안 나오더라. 사랑하니까 지켜주고 싶은 자존심이 내 현실을 갉아먹고 있었다.
한번은 아내와 크게 다툰 적이 있다. 처가댁에 보낼 돈 때문에 내가 예민하게 굴었을 때, 아내의 서운함 가득한 눈빛을 보며 나는 세상에서 가장 찌질한 남자가 된 기분이었다. "사랑한다면서 고작 돈 때문에 이래?"라고 묻는 것 같은 그 침묵이 내 가슴을 후벼 팠다. 돈이 전부는 아니라고 믿으며 살아왔는데, 하노이 한복판에서 나는 결국 돈 때문에 아내 가슴에 대못을 박고 있었다. 사랑만으로 모든 걸 덮기엔 베트남의 현실은 너무나 구체적이고 냉정했다.
아내가 해준 저녁밥을 먹으면서도 머릿속으론 내일 나갈 공과금을 계산하고 있는 내 모습이 참 싫었다. 이게 내가 꿈꾸던 국제결혼의 결말이었나 싶어 숟가락이 무겁게만 느껴졌다.
낭만이 빠져나간 자리에 남은 흉터들
이제는 하노이의 노을을 봐도 예전처럼 설레지 않는다. 저 노을이 지면 또 내일의 치열한 삶이 시작될 거라는 공포가 먼저 앞선다. 아내를 향한 사랑은 여전하지만, 그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내가 포기해야 했던 한국에서의 편안함과 친구들, 그리고 익숙한 풍경들이 문득문득 가슴을 찌른다. "왜 그렇게까지 사느냐"는 한국 친구들의 무심한 질문에 허허 웃으며 넘기지만, 전화를 끊고 나면 묘한 허탈감이 몰려온다. 나를 지탱해주는 건 오직 아내 하나뿐인데, 그 아내마저 내 힘듦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때면 나는 정말 무너져 내린다.
사랑은 마법이 아니었다. 사랑은 오히려 지독한 인내였고, 내 밑바닥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베트남 생활 3년, 나는 이제 로맨티시스트의 가면을 벗고 생계형 이방인이 되었다. 멋진 저녁 식사보다는 마트 할인을 먼저 챙기고, 아내에게 선물할 꽃다발 가격을 보며 몇 번을 망설인다. 이런 내 모습이 가끔은 낯설고 징그럽게 느껴지지만, 이게 하노이에서 사랑을 지키며 살아가는 진짜 모습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가끔 밤늦게 혼자 맥주 한 캔을 마시며 베란다 밖을 본다. 수많은 오토바이 불빛이 흐르는 저 거리에 내 자리가 있긴 한 걸까. 사랑 하나 믿고 온 이 땅에서 나는 얼마나 더 단단해져야 할까. 정답은 없다는 걸 알지만, 오늘도 나는 내일의 현실을 견디기 위해 억지로 눈을 감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아침을 맞는 이유
아침이 오면 아내는 어김없이 따뜻한 쌀국수 한 그릇을 내어준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물을 한 모금 들이키면, 어젯밤의 그 처절했던 독백들이 조금은 가라앉는다. 그래, 이 한 그릇의 온기를 지키기 위해 나는 오늘도 하노이의 매연 속으로 뛰어드는 거다. 사랑만으로 버티기엔 현실이 너무 무겁지만, 그 무거운 현실을 지탱해주는 유일한 힘 역시 아내의 따뜻한 손길이라는 이 아이러니. 이 지독한 굴레가 바로 베트남 생활의 본질일지도 모르겠다.
그날 이후로는 아내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지 않기로 했다. 아내도 나만큼 힘들 거라는 걸, 낯선 나라에서 온 고집불통 남편을 받아내느라 아내의 마음도 이미 닳고 닳았을 거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서로의 결핍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억지로 메우려 하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같이 걸어가기로 했다. 대단한 낭만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남은 건 좀 더 질기고 단단한 '전우애' 같은 감정이다.
오늘 하루도 참 길었다. 통장 잔고는 여전히 슬프고 하노이의 날씨는 변덕스럽지만, 옆에서 곤히 잠든 아내의 숨소리를 들으니 "그래도 살아보자"는 마음이 든다. 사랑만으로 버티기엔 현실이 너무 맵지만, 그 매운맛에 익숙해지는 것도 삶의 일부겠지.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담담하게 현실을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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