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 25

여기서 계속 살아도 될까 혼자 고민이 많았던 하노이의 밤

베란다 난간에 팔을 걸치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가로등 불빛 아래로 짙은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하노이의 도로는 완전히 잠들지 않은 모양이다. 멀리서 들려오는 오토바이의 낮은 엔진 소리가 습한 공기를 타고 묵직하게 전해졌고, 건너편 아파트 단지의 불빛들은 안개에 번져 흐릿한 주황색 점들로 보였다. 나는 낮에 마시다 남은 캔커피의 미지근한 마지막 한 모금을 들이켰다. 입안에 남은 텁텁한 단맛이 오늘 하루의 피로와 뒤섞여 묘한 기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문득 발아래를 지나가는 오토바이 불빛 하나를 끝까지 쫓아가 봤다. 저 사람은 이 늦은 시간에 어디로 가는 걸까, 내일 아침이면 또 어떤 얼굴로 일터를 향할까 하는 아무런 의미 없는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다 그냥 ..

베트남 살면서 입맛만 바뀐 줄 알았는데 생각이 참 많이 달라졌네요

처음 하노이에 왔을 때 나는 전형적인 한국인이었다. 모든 것이 빨라야 했고, 깨끗해야 했으며, 정해진 규칙 안에서 움직여야 직성이 풀렸다. 식당에 가면 물티슈의 위생 상태를 먼저 체크했고, 길거리의 무질서한 오토바이 행렬을 보며 "이 나라는 대체 왜 이럴까"라는 오만한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고수를 듬뿍 넣은 쌀국수를 목욕탕 의자에 앉아 아무렇지 않게 먹고 있다. 단순히 입맛이 적응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내 안의 단단했던 가치관이 베트남의 습한 공기에 녹아내려 흐물흐물해진 것이었다.고수 한 줄기에 담긴 타협의 역사고수 특유의 비누 향이 싫어 "No Rau Mùi(노 라우 무이)"를 외치던 시절이 있었다. 그 한 줄기가 내 완벽한 식사를 망치는 침입자처럼 느껴졌다. 하지..

국제결혼 서류 준비하면서 알게 된 공중 과정 기록

사랑해서 결혼하겠다는데 국가가 요구하는 종이 뭉치는 생각보다 훨씬 두껍고 차가웠다. 국제결혼이라는 거창한 이름 뒤에는 '공증'이라는 끝없는 계단이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그 계단을 오르내리며 내 인내심의 바닥을 몇 번이고 확인해야 했다. 처음엔 그냥 서류 몇 장 떼어서 도장만 찍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하노이의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공증 사무소를 찾아 헤매고 번역본의 오타 하나 때문에 발길을 돌려야 했던 그날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입안이 까칠해질 만큼 피곤하다.번역과 공증, 그 지독한 뫼비우스의 띠가장 먼저 마주한 벽은 '번역 공증'이었다. 한국에서 떼어온 혼인관계증명서와 가족관계증명서를 베트남어로 옮기는 과정부터가 고역이었다. 단순히 언어를 바꾸는 게 아니라, 그 서류가 '진짜'임을 증명받기 위해 외..

사랑만으로 버티기엔 베트남 생활은 역시 현실이었다

처음 아내를 만나 베트남행을 결심했을 때만 해도 내 머릿속은 온통 핑크빛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지옥이라도 가겠다"는 유치한 대사가 내 삶의 모토가 될 줄 알았다. 하노이의 매연도, 낯선 언어도 아내의 미소 한 번이면 다 녹아내릴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공항 게이트를 나서는 순간 마주한 하노이의 습한 공기는 내 낭만을 순식간에 현실의 눅눅함으로 바꿔놓았다. 사랑은 분명 위대하지만, 매일 아침 눈을 뜨며 마주하는 베트남의 아침은 지독하리만큼 현실적이었다.언어라는 장벽 앞에 무너진 로맨티시스트가장 먼저 나를 괴롭힌 건 침묵이었다. 아내와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도 내 짧은 베트남어와 아내의 서툰 한국어 사이에는 늘 거대한 강이 흐르고 있었다. 마음속엔 수만 가지 감정이 소용돌이치는데, 정작 입 밖..

아내랑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는데 편했던 순간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탁을 치우는 소리가 멎었다. 하노이의 밤은 늘 그렇듯 창밖에서 들려오는 오토바이의 낮은 저음과 어디선가 들려오는 이웃집의 TV 소음으로 채워져 있었다. 거실 스탠드 하나만 켜둔 채 우리는 소파 양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내는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보고 있었고, 나는 낮에 읽다 만 잡지의 광고 면을 무심하게 넘기고 있었다. 선풍기 헤드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느릿하게 고개를 저으며 바람을 보냈다. 바람이 닿을 때마다 셔츠 깃이 살랑거렸고, 그 소리가 내 귓가에는 유난히 선명하게 들렸다.우리는 10분 넘게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보통의 부부라면 "오늘 어땠어?"라든가 "내일은 뭐 할까?" 같은 말들을 주고받았겠지만, 오늘은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베트남 물가 싸다더니 내 통장은 왜 이 모양일까

토요일 오후, 하노이 미딩 근처의 대형 마트 계산대 앞은 늘 활기가 넘친다. 내 앞줄에 선 외국인 가족은 카트에 수입 치즈와 와인을 가득 담았고, 그 뒤의 베트남 젊은 부부는 아이용 기저귀 대용량 팩을 두 개나 챙겼다. 나는 아내와 함께 카트 손잡이를 잡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우리가 담은 건 별거 없었다. 늘 먹는 쌀 5kg 한 포대, 계란 한 판, 아침 대용으로 먹을 우유와 식빵, 그리고 한국산 고추장 작은 것 하나 정도였다. 계산원이 바코드를 찍을 때마다 '삑, 삑'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고, 화면에 표시되는 숫자는 멈출 줄 모르고 올라갔다."250만 동입니다(약 13만 원)." 계산원이 무심하게 건넨 영수증을 받아 드는 순간, 손끝에 닿는 종이의 질감이 유난히 서늘했다. 분명 한국에서 장을..

어느 순간 하노이가 낯설지 않게 느껴졌던 날

오후 2시, 하노이의 열기는 정점에 달해 있었다. 거실 창문을 열어두었더니 습하고 뜨거운 공기가 거실 바닥 타일에 눅눅하게 달라붙는 게 느껴졌다. 예전 같으면 곧장 에어컨을 켜고 창문을 닫았겠지만, 오늘은 그냥 그 끈적임을 내버려 두었다. 선풍기 날개가 덜덜거리며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소파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하얀 회벽 모서리에 아주 작은 도마뱀 한 마리가 멈춰 서 있었다. 꼬리를 아주 미세하게 흔들며 먹잇감을 노리는 그 모습이 이제는 징그럽지도, 신기하지도 않았다. 그저 '오늘도 제 자리에 있구나' 하는 정도의 무덤덤한 확인뿐이었다.냉장고에서 꺼낸 생수병 표면에 금세 물방울이 맺혀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나는 수건을 가져와 닦는 대신 손가락으로 그 물방울을 훑어 내렸다. 손끝에 닿는 차가운 감..

하노이 도로 위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멘탈 나간 날

하노이에서 오토바이를 탄다는 건 매일 아침 목숨을 건 도박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처음엔 무서웠고, 좀 지나니 익숙해졌고, 나중엔 내가 베트남 사람이라도 된 양 요리조리 칼치기를 하며 달렸다. "나는 사고 안 나겠지"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던 그날 오후, 하노이의 도로는 보란 듯이 내 오만한 코를 납작하게 눌러버렸다.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손바닥에 땀이 흥건해진다.찰나의 순간, 그리고 멈춰버린 세상쾅. 소리보다 먼저 느껴진 건 몸이 공중에 붕 뜨는 이질적인 감각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내 시야는 하늘과 땅을 번갈아 비췄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아스팔트 바닥에 대자로 뻗어 있었다. 주변을 가득 채우던 오토바이 경적 소리가 멀게만 느껴지고, 내 거친 숨소리만 귓가에 크게 울렸다...

하노이에서 서류 하나에 붙잡혀 하루를 다 보내고 돌아오던 길

아침 8시. 창밖으로 쏟아지는 하노이 햇살이 유난히 따갑더라니. 어제 미리 챙겨둔 서류 뭉치를 가방에 쑤셔 넣고 오토바이에 올라탈 때만 해도 내 계획은 완벽했다. 점심 전까지 깔끔하게 공증받고, 오후엔 시원한 카페에서 아아나 한 잔 때리며 밀린 일 좀 하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하노이는 늘 내 계획을 비웃듯 예상치 못한 변수를 던지곤 한다. 오늘은 그 변수가 내 하루 전체를 집어삼킨 날이다.5분의 차이가 불러온 거대한 나비효과오토바이를 타고 공증 사무소로 향하는 길은 거대한 매연 세탁기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사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배기가스와 달궈진 아스팔트 열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마스크를 썼는데도 입안에서 먼지가 서걱거렸다. 그래도 "이것만 끝내면 된다"는 생각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했는데,..

하노이에서 집 구하다 땀쭈 때문에 멘붕 온 썰

하노이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진짜 근거 없는 자신감이 넘쳤다. 한국에서 이사를 한두 번 해본 것도 아니고, 대충 복덕방 가서 계약서 쓰고 살면 그만인 줄 알았다. 근데 베트남은 시작부터가 완전 딴판이었다. 노이바이 공항에 내려서 후끈한 공기를 마실 때만 해도 내가 여기서 '유령 인간' 취급을 받으며 한 달을 보낼 줄은 꿈에도 몰랐다. 특히 이름도 생소한 '땀쭈'라는 녀석이 내 정착 초기 꿈을 아주 처참하게 박살 낼 줄이야.처음 만난 집주인 아저씨는 인상이 참 좋았다. 금테 안경을 쓰고 서툰 영어로 "땀쭈는 내가 온라인으로 다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고 짐이나 풀라"며 환하게 웃는데, 그 미소에 홀딱 속아 아무 의심 없이 내 소중한 여권을 넘겨줬다. 그땐 그게 베트남식 서비스인 줄 알고 "땡큐"를 연발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