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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비자 연장, 하노이 출입국 관리소에서 보낸 인내의 기록

베트남에서 외국인으로 산다는 것은 '비자'라는 단어와 평생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여러 번의 비자 갱신을 겪었지만, 이번만큼은 대행사의 도움 없이 제 발로 직접 하노이 출입국 관리소를 찾아가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주변에서는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했지만, 현지인 아내와 가정을 꾸리고 사는 입장에서 이 나라의 행정 시스템을 직접 마주하는 과정이 한 번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진짜, 그때는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돈 주고 맡길걸.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 결정은 제 베트남 생활 중 가장 땀을 많이 흘린 날 중 하나로 기억될 것입니다. 하노이 팜응옥탁(Pham Ngoc Thach)에 위치한 출입국 관리소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 이미 수많은 인..

하노이에서 아무 일도 없던 하루가 오히려 기억에 남는 이유

오늘은 정말이지 아무 일도 없었다. 아침 7시 15분, 평소보다 조금 늦게 눈을 떴을 때 천장에서 돌아가는 실링팬은 어제와 똑같은 속도로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창밖은 하노이 특유의 습한 안개가 낮게 깔려 있었고, 멀리서 들려오는 오토바이 경적 소리는 습기에 짓눌려 평소보다 둔탁하게 들렸다. 침대에서 일어나 발바닥에 닿는 타일의 서늘한 감촉을 느끼며 주방으로 향했다.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고 물이 끓기 전까지의 그 짧은 정적 속에서 나는 내가 오늘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잠시 잊기로 했다. 특별히 바쁜 일이 없어서라기보다, 그냥 그 순간의 정적이 깨지는 게 싫었을 뿐이다.연유를 듬뿍 넣은 카페쓰어다 한 잔을 내리고 소파 깊숙이 몸을 묻었다. 커피잔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김이 내 안경 너머로 번졌고, 나는 그 뿌..

혼인 신고 서류 때문에 아내랑 말다툼했던 기억

베트남 국제결혼을 준비해 본 분들은 알겠지만, 이 과정은 사랑만으로 버티기엔 너무나 가혹한 '서류 전쟁'의 연속입니다. 저와 아내도 예외는 아니었죠. 하노이의 습한 여름날, 혼인 신고를 위한 마지막 서류 뭉치를 들고 카페에 앉아있던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각하면 입안이 씁쓸해집니다. 당시에는 그 종이 쪼가리 몇 장이 우리 사이를 이렇게 갈라놓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정신감정서'였습니다. 베트남에서 혼인 신고를 하려면 외국인 배우자가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진단서가 필요한데, 이게 참 사람 진을 빼놓더라고요. 하노이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정신병원까지 아침 일찍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가, 낯선 검사들을 통과하고 몇 시간을 기다려 겨우 받아온 서류였습니다. 봉투를 열어본 아내의 얼굴이 싹 굳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