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25

어느 순간 하노이가 낯설지 않게 느껴졌던 날

오후 2시, 하노이의 열기는 정점에 달해 있었다. 거실 창문을 열어두었더니 습하고 뜨거운 공기가 거실 바닥 타일에 눅눅하게 달라붙는 게 느껴졌다. 예전 같으면 곧장 에어컨을 켜고 창문을 닫았겠지만, 오늘은 그냥 그 끈적임을 내버려 두었다. 선풍기 날개가 덜덜거리며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소파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하얀 회벽 모서리에 아주 작은 도마뱀 한 마리가 멈춰 서 있었다. 꼬리를 아주 미세하게 흔들며 먹잇감을 노리는 그 모습이 이제는 징그럽지도, 신기하지도 않았다. 그저 '오늘도 제 자리에 있구나' 하는 정도의 무덤덤한 확인뿐이었다.냉장고에서 꺼낸 생수병 표면에 금세 물방울이 맺혀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나는 수건을 가져와 닦는 대신 손가락으로 그 물방울을 훑어 내렸다. 손끝에 닿는 차가운 감..

하노이 도로 위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멘탈 나간 날

하노이에서 오토바이를 탄다는 건 매일 아침 목숨을 건 도박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처음엔 무서웠고, 좀 지나니 익숙해졌고, 나중엔 내가 베트남 사람이라도 된 양 요리조리 칼치기를 하며 달렸다. "나는 사고 안 나겠지"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던 그날 오후, 하노이의 도로는 보란 듯이 내 오만한 코를 납작하게 눌러버렸다.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손바닥에 땀이 흥건해진다.찰나의 순간, 그리고 멈춰버린 세상쾅. 소리보다 먼저 느껴진 건 몸이 공중에 붕 뜨는 이질적인 감각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내 시야는 하늘과 땅을 번갈아 비췄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아스팔트 바닥에 대자로 뻗어 있었다. 주변을 가득 채우던 오토바이 경적 소리가 멀게만 느껴지고, 내 거친 숨소리만 귓가에 크게 울렸다...

하노이에서 서류 하나에 붙잡혀 하루를 다 보내고 돌아오던 길

아침 8시. 창밖으로 쏟아지는 하노이 햇살이 유난히 따갑더라니. 어제 미리 챙겨둔 서류 뭉치를 가방에 쑤셔 넣고 오토바이에 올라탈 때만 해도 내 계획은 완벽했다. 점심 전까지 깔끔하게 공증받고, 오후엔 시원한 카페에서 아아나 한 잔 때리며 밀린 일 좀 하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하노이는 늘 내 계획을 비웃듯 예상치 못한 변수를 던지곤 한다. 오늘은 그 변수가 내 하루 전체를 집어삼킨 날이다.5분의 차이가 불러온 거대한 나비효과오토바이를 타고 공증 사무소로 향하는 길은 거대한 매연 세탁기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사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배기가스와 달궈진 아스팔트 열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마스크를 썼는데도 입안에서 먼지가 서걱거렸다. 그래도 "이것만 끝내면 된다"는 생각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