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정체는 평소보다 조금 더 심했다. 하노이의 금요일 오후는 늘 그렇듯 오토바이 매연과 경적 소리가 뒤섞여 거대한 소음의 장벽을 만들어낸다. 헬멧 속으로 땀방울이 흘러내려 눈가가 따끔거렸지만, 핸들을 쥔 손을 뗄 수가 없어 그냥 눈을 몇 번 껌뻑이며 버텼다. 앞차의 번호판 숫자를 의미 없이 세어보기도 하고, 옆에 선 버스 창문에 비친 내 초췌한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했다. 특별히 기분이 나쁜 것도, 그렇다고 좋은 것도 아닌 그냥 무채색의 시간들이 도로 위에서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빨리 집에 가서 씻고 싶다는 생각 외에는 머릿속에 들어찬 것이 없었다.
집 근처 골목 입구에 다다랐을 때, 평소에 보지 못했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낡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부채질을 하던 구멍가게 아저씨가 길을 지나가던 강아지 한 마리에게 과자 조각을 던져주고 있었다. 강아지는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과자를 받아먹으려다 제풀에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모습이 너무 뜬금없고 우스꽝스러워 나도 모르게 풉,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저씨도 나와 눈이 마주치자 멋쩍은 듯 이빨 빠진 미소를 지어 보이며 강아지 머리를 툭 쳤다. 정말 별거 아닌 장면이었는데, 그 짧은 순간 하노이의 습한 공기가 아주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사소함이 주는 기묘한 기분
집에 돌아와 헬멧을 벗고 거울을 보니 얼굴에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다. 세수를 하고 나와 시원한 물 한 잔을 마시는데 아까 그 강아지의 엉덩방아가 자꾸 생각나서 혼자 낄낄거렸다. 아내가 "왜 그래? 좋은 일 있어?"라고 물었지만, 나는 그냥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대답했다. 이걸 설명하기엔 너무 사소해서 오히려 구차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냥 웃음이 났다. 이유를 찾으려 하면 오히려 그 웃음의 결이 변해버릴 것 같아 나는 그냥 입가에 남은 잔상을 그대로 두기로 했다. 특별한 대화도, 대단한 사건도 없는 저녁이지만 이런 무미건조함 속에 섞인 짧은 웃음이 나쁘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베란다에 나가 앉았다. 건너편 집에서는 텔레비전 소리가 작게 흘러나왔고, 어디선가 고기를 굽는 고소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하노이의 저녁은 늘 이런 식이다. 시끄럽고 무질서한 것 같으면서도, 막상 그 안으로 들어가 보면 각자의 삶이 아주 평범하고 느릿하게 흐르고 있다. 나는 난간에 턱을 괴고 길 아래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퇴근하는 가장의 무거운 어깨, 손을 잡고 걷는 연인들, 그리고 아까 그 강아지처럼 천방지축 뛰어다니는 아이들까지. 그들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눈으로 쫓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딱히 무언가를 깨닫거나 느낀 것은 아니었다. 그냥 보고 있었다.
밤이 깊어지니 공원이 한결 조용해졌다. 가로등 아래로 작은 벌레들이 모여들어 원을 그리며 날고 있었다. 나는 그 움직임을 한참 동안 지켜봤다. 저 벌레들은 왜 저렇게 필사적으로 빛 주위를 도는 걸까. 문득 궁금해졌지만 곧 그 궁금증을 접었다. 이유를 알아서 뭐 하겠나. 그냥 저렇게 사는 게 쟤들의 일인 것을. 나도 그냥 이렇게 앉아 밤바람을 맞는 게 지금 내 상태다. 방 안에서는 아내가 내일 입을 옷을 다림질하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치익, 치익. 그 소리가 마치 자장가처럼 나른하게 들려왔고, 나는 베란다 의자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크게 켰다. 몸의 뼈마디가 우두둑 소리를 내며 풀리는 느낌이 선명했다.
그저 흐르는 대로의 저녁
특별한 대화도, 대단한 사건도 없는 저녁이지만 이런 무미건조함이 주는 안락함이 꽤나 마음에 든다. 내일은 또 내일의 소음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오토바이 경적 소리에 잠을 깨고, 복잡한 서류 뭉치와 씨름하며 머리를 싸매겠지. 하지만 적어도 오늘 저녁에 느꼈던 그 짧은 웃음 한 조각은 내 마음 한구석에 그냥 놓여 있을 것이다. 그것만 있으면 내일의 짜증도 조금은 무뎌질 것 같다. 방으로 들어가 불을 껐다. 어둠 속에서 아내의 고른 숨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에서 돌아가는 실링팬의 그림자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림자는 일정한 속도로 원을 그리며 벽면을 스치고 지나갔다.
눈을 감으니 아까 본 강아지의 꼬리짓이 다시 떠올랐다. 하노이의 밤은 여전히 습하고 묵직한 소음들로 채워져 있었지만, 지금 내 방 안은 기분 좋을 정도의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덥다고 했던가, 아니면 비가 온다고 했던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특별히 무언가를 정리하거나 다짐하지 않아도 되는 저녁은 참 오랜만이었다. 그냥 웃음이 났던 그 짧은 순간이 오늘 하루의 가장 큰 사건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나는 서서히 의식을 놓았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모여서 하루를 만든다. 그리고 그 하루가 모여서 삶이 된다. 나는 오늘 그 삶의 편린 중 하나를 웃음으로 채웠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더 이상의 생각은 사치였다. 밖에서는 여전히 오토바이 한 대가 굉음을 내며 지나갔고, 나는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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