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생활 기록

베트남에서 몸이 아프니 한국에 계신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났던 밤

흰돛단배B 2026. 4. 9. 21:44

어젯밤에는 열이 좀 나더군요. 하노이의 습한 열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몸이 지친 건지 모르겠지만 머리가 깨질 듯 아파서 혼자 끙끙 앓았습니다. 약장 서랍을 뒤져봐도 죄다 베트남어로 쓰인 약들뿐이라, 이걸 먹어도 되나 싶어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그냥 물 한 잔 마시고 침대에 누웠습니다. 캄캄한 방 안에서 천장을 보고 누워 있으니, 참 신기하게도 한국에 계신 어머니 생각이 제일 먼저 났습니다. 평소에는 잊고 지내다가도 꼭 이렇게 몸이 무너지면 마음이 먼저 고향으로 달려가네요.

머리맡을 지켜주던 그 투박한 손길의 기억

어릴 때 열이 나면 어머니는 꼭 수건을 찬물에 적셔다가 제 이마 위에 올려주곤 하셨죠. 자다가 눈을 뜨면 늘 머리맡에서 지키고 앉아 계시던 그 투박한 손길이, 이 먼 타국에 와서 아프고 나니 왜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운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여든을 넘기셔서 오히려 제가 챙겨드려야 할 연세인데도, 몸이 약해지니 여전히 저는 그 품이 그리운 어린 사내아이로 돌아가 버리나 봅니다. 지난 3월 어머니 팔순 잔치 때 온 가족이 모여 웃고 떠들던 그 왁자지껄한 소리가 귓가에 쟁쟁한데, 지금은 하노이의 낯선 오토바이 소리만 창문 너머로 들려오네요.

 

사실 전화를 걸까 말까 몇 번을 고민했습니다. 이 밤에 전화해서 아프다고 하면 얼마나 걱정하실지 뻔히 아니까요. "밥은 먹었니?", "아픈 데는 없니?" 늘 똑같은 그 질문에 매번 건성으로 대답했던 제 모습이 떠올라 괜히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습니다. 타지 생활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도 못했는데, 아쉬울 때만 엄마를 찾는 제 자신이 참 이기적이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결국 전화를 거는 대신 예전에 찍어둔 어머니 사진만 한참을 들여다봤습니다. 흰머리가 부쩍 늘어난 당신의 얼굴을 보니, 돈 벌겠다고 타국에 나와 있는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나이 오십이 넘어서도 아프면 엄마를 찾는다는 게 참 못나 보이기도 하지만, 이게 사람 사는 모습 아닐까 싶습니다. 기계처럼 딱딱 맞춰진 일상 속에서 가끔 이렇게 무너지는 밤이 있어야, 내가 지금 누구를 위해 여기서 버티고 있는지 다시 깨닫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하노이의 밤은 유독 길고 습하지만, 어머니 사진을 머리맡에 두고 누우니 마음만큼은 조금 시원해지는 기분입니다.

 

내일 아침에는 부디 이 열도, 마음의 허전함도 조금은 가라앉아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냥 약 대신 어머니 목소리를 떠올리며 억지로 눈을 감았습니다. 주말에 목소리라도 들으면 좀 나아지겠지 생각하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