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갑자기 쏟아지는 하노이 비 때문에 멈춰선 10분
방금까지 멀쩡하던 하늘이 갑자기 무너져 내리는 걸 보니 역시 하노이는 하노이네요. 오토바이를 세우고 근처 건물 처마 밑으로 간신히 몸을 피했습니다. 빗줄기가 얼마나 굵은지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헬멧을 벗고 땀에 젖은 머리를 쓸어 넘기는데, 옆에서 같이 비를 피하던 베트남 청년이 담배 한 대를 권하네요.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그 친구의 무심한 눈빛이 왠지 싫지 않았습니다.
길 건너편 노점상은 익숙한 듯 비닐 천막을 치고 그 아래 옹기종기 모여 앉아 빗소리를 배경 삼아 차를 마시고 있습니다. 저 사람들에게 이 비는 그저 하루의 잠깐 스쳐 지나가는 일상일 텐데, 저는 왜 이렇게 마음이 급했나 싶습니다. 젖어버린 운동화를 보니 짜증이 확 올라오다가도,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물 소리를 듣고 있으니 묘하게 마음이 차분해지기도 하네요. 아내한테 조금 늦을 것 같다고 메시지를 보냈더니 "비 오니까 조심해서 천천히 와"라는 답장이 바로 옵니다.
딱 10분만 이러고 서 있다가 가려고 합니다. 어차피 이 비는 금방 그칠 테니까요. 그냥 이런 날도 있는 거겠죠.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일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기보다는 가끔은 이렇게 멈춰 서게 되네요. 서류 문제로 골머리를 앓을 때도, 말이 안 통해 답답할 때도 사실은 이 비처럼 그냥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려야 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빗줄기가 조금씩 가늘어지는 게 보입니다. 다시 오토바이 시동을 걸어야 할 시간입니다. 옷은 좀 젖겠지만 집에 가서 시원하게 씻고 아내가 해주는 저녁 먹을 생각 하니 기운이 좀 나네요. 하노이의 비는 참 변덕스럽지만, 덕분에 이렇게 강제로 쉬어가는 시간도 생기고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자, 이제 다시 출발해 봐야겠습니다.
축축한 신발은 좀 찝찝하지만, 뭐 내일이면 마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