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가 식구들과 첫 식사 자리, 문화 차이 때문에 진땀 흘렸던 하루
베트남 아내와 결혼을 약속하고 처음으로 처가 식구들을 한자리에 모시고 식사하던 날, 저는 한국에서 가져온 정장을 챙겨 입고 나름대로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하노이 근교의 조용한 마을, 처가 댁 마당에 깔린 돗자리를 본 순간 제 계획은 첫 단추부터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수십 명의 친척이 모인 그 자리는 제가 상상했던 정갈한 식당이 아니라, 거대한 '동네 잔치'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훅 끼쳐오는 습한 열기와 함께 왁자지껄한 베트남어가 마당 가득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좌식 문화와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는 '요(Yo)!'
가장 먼저 저를 당황하게 만든 건 돗자리 위에 옹기종기 앉아 밥을 먹는 좌식 문화였습니다. 한국도 좌식이 익숙하다지만, 좁은 공간에 수많은 사람이 밀착해 앉아 몇 시간 동안 술잔을 부딪치는 건 차원이 다른 에너지더군요. 장인어른을 비롯한 삼촌들이 돌아가며 잔을 들고 "못, 하이, 바, 요!(하나, 둘, 셋, 마셔!)"를 외칠 때마다, 저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잔을 비워내야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윗사람 앞에서 고개를 돌려 마시는 게 예의라고 배웠는데, 여기서는 눈을 똑바로 맞추고 잔을 부딪쳐야 친근함의 표시라는 아내의 속삭임에 뒤늦게 자세를 고쳐 잡기도 했습니다.
잔을 부딪칠 때마다 상대방의 잔보다 내 잔을 낮게 위치시켜야 한다는 미묘한 예절 싸움도 제 신경을 곤두세우게 했습니다. 술기운이 오를수록 목소리는 커지고, 저를 향한 질문 세례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알아들을 수 있는 건 그저 제 이름과 "한 꾸옥(한국)"이라는 단어뿐이었지만, 그들의 호의적인 눈빛만큼은 술잔의 온도만큼이나 뜨거웠습니다. 다리에 쥐가 나기 시작했지만, 이 뜨거운 열기 속에서 감히 다리를 뻗을 엄두조차 나지 않는 묘한 긴장감이 계속되었습니다.
젓가락 끝에서 벌어진 낯선 음식과의 사투
문제는 술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접시 가득 쌓인 민물고기 튀김과 각종 향채,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고기 요리들이 제 앞에 놓일 때마다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특히 베트남 사람들이 귀한 손님에게 대접한다는 보양식이라며 장인어른이 직접 제 밥그릇에 정체 모를 부위의 고기를 얹어주셨을 때, 저는 아내를 간절한 눈빛으로 쳐다봤습니다. 아내는 키득거리며 "오빠, 그거 정력이니까 다 먹어야 해"라고 농담을 던졌지만, 제 젓가락은 갈 곳을 잃고 한참을 허공에서 헤맸습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거대한 민물 생선의 머리와 눈을 마주하며, 예의를 지키고 싶은 마음과 본능적인 거부감 사이에서 제 위장은 쉴 틈 없이 요동쳤습니다. 하지만 옆에서 지켜보시던 할머님이 손수 쌈을 싸서 입에 넣어주시는 정성 앞에서는 도저히 거부할 방법이 없더군요. 코끝을 찌르는 강렬한 향채와 쿰쿰한 소스의 향이 입안 가득 퍼지는 순간, '아, 이게 진짜 베트남의 맛이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묘한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못 먹을 것 같던 음식도 사람의 정이 섞이니 신기하게 목구멍을 넘어가더군요.
언어의 장벽을 넘어선 장인어른의 투박한 손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토록 답답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습니다. 친척 어르신들이 저에게 뭐라고 질문을 던지시면, 저는 그저 "신 짜오"와 "깜 언"만 무한 반복하는 인형이 된 기분이었죠. 제가 당함할 때마다 옆에서 아내가 통역해주느라 정작 자기는 밥 한 술 제대로 못 뜨는 모습을 보니 미안한 마음까지 더해졌습니다. 한국 사위가 와서 대접받는 자리라고만 생각했는데, 사실은 제가 이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일종의 '입학시험'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식사가 중반쯤 지났을 때, 무뚝뚝하게 술만 권하시던 장인어른이 제 어깨를 툭 치시더니 말없이 과일 한 조각을 건네주셨습니다. 별말씀은 없으셨지만, 그 투박하고 거친 손마디에서 묘한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내 딸 잘 부탁하네"라는 말이 들리는 것만 같아 저도 모르게 고개를 깊게 숙여 인사했습니다. 비록 말은 한 마디도 통하지 않았고, 저는 여전히 불편한 자세로 다리에 쥐가 나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이 왁자지껄한 소음이 더 이상 소음으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소란스러움 속에 제가 아주 조금씩 스며들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잔치가 끝나고 돌아오는 오토바이 위에서 아내가 제 허리를 꼭 잡으며 물었습니다. "오빠, 오늘 많이 힘들었지?" 저는 대답 대신 아내의 손을 꽉 잡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몸은 천근만근이었고 속은 술기운에 울렁거렸지만, 마음 한구석은 이상하게 든든해진 기분이었거든요. 베트남의 덥고 습한 밤공기가 그날따라 유독 시원하게 느껴졌습니다.